
이대진은 대한민국 프로야구 최고 투수 출신 지도자이다. 전 KIA 타이거즈 투수. 현 KIA 타이거즈 2군 투수 코치였다. 이종범(2012년 은퇴), 김종국(2010년 은퇴), 장성호(2015년 은퇴)와 함께 해태 타이거즈와 KIA 타이거즈를 잇는 영혼과도 같은 투수. 특히 역대 타이거즈 투수진에서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활약한 선수이다. 1990년대에 정민태, 정민철, 이상훈 등과 함께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10타자 연속탈삼진 기록을 세울 때의 구위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다. 별명은 에이스 오브 에이스, 대진성 하지만 현재로서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예시로 자주 언급되며 최악 of 최악의 평을 받고 있다. 시즌이 끝난 후 뜬금없이 한화 이글스의 ..

배달의민족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요기요, 배달통과 함께 배달 앱 업계를 3등분하고 있다. 디자이너 출신인 김봉진 대표가 설립한 '우아한형제들'에서 제작했으며, 앱은 2010년 6월에 출시했고 회사는 5개월 뒤 설립했다. 이름이 배달의 민족인 이유는 브랜드를 다룬 책 『배민다움』 (홍성태지음,넥스콘 출판)에서 "젊은 친구들이 이것저것 많이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다는 의미에서 배달의 민족이라고도 하고 밝은 땅에 사는 민족이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죠"라고 하였다. 국내 배달앱 1위로 압도적인 시장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간 연평균 70% 이상의 높은 매출 성장율을 기록 중이다. 시장 형성 초기 시장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오래도록 적자를 봐 왔으나 2016년 연간..

김종규는 대한민국의 프로농구선수이다. 전 창원 LG 세이커스 현 원주 DB 프로미 소속 센터. KBL 정상급 토종 센터 중 한 명이자 전직 창원 아이돌이었다. 경희대 재학시절 김민구, 두경민과 함께 경희대 빅3로 불리면서 경희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이자, 국가대표로서는 김주성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불리는 선수이다. 낙생고 재학 시절에 고교 최고의 센터 자원으로 불리면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김종규를 잡는 대학이 스카우트 싸움의 승자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결국 승자는 경희대가 되었다. 경희대는 김종규가 입학한 1학년부터 졸업하는 4학년까지 모두 한국대학농구리그의 결승전에 오르면서 두 차례 우승을 거두는 등, 농구부 창설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김종규가 센터로 팀의 골밑을 지키고, 김민..

김상규는 대한민국의 프로농구 선수이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포워드이다. 광주고 시절 주 포지션은 포워드였지만 장신이라는 점 때문에 센터로도 나서는 일이 많았던 선수였다. 전력이 강하지 않았던 팀 사정상 많은 시간을 출전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다르게 고교 시절 별명이 노예였을 정도이었다. 이후 단국대학교에 진학했는데, 단국대학교에서는 만능 포워드이었다. 팀이 대학무대에서 강호가 아니었고, 김상규를 제외한 다른 멤버도 특출난 선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국대의 외로운 에이스였다. 그나마 김현민이 있을 때는 상황이 나았지만 김현민이 졸업하고 주장인 된 4학년 때는 정말 현대판 노예였다. 평균 39분 47초를 뛰며 26.8득점 14.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득점, 리바운드, 2점슛, 자..

민경욱은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정치인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실 대변인을 지냈다. 2019년 5월 19일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공손히 악수를 했던 김정숙 영부인께서 황교안 대표와는 악수도 없이 뻔히 얼굴만 보고 지나쳤다”고 비난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의자와 우산, 물병이 날아다니는 속에서도 화합을 위해 광주를 찾은 황 대표였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과 악수했던 것을 환기하며 황 대표를 향한 김정숙 여사의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민경욱 대변인은 “내민 손 한 번 잡아주면 될 것을 뿌리쳤다”며 “손을 뿌리친 그 모습은 분열과 협량의 상징이 돼 이 정권을 괴롭힐 것”이라고 경고..

정두홍은 대한민국의 무술감독이자 배우이다. 1966년 12월 14일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1985년 인천전문체육대학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를 비롯한 무술을 배워 액션배우의 꿈을 키웠고, 무술감독 김영모 문하에서 수련한 후 1989년 스턴트맨으로 데뷔하였다. 《더블 에이치 멀티짐》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태권도 4단, 합기도 5단, 격투기, 유도, 킥복싱, 검도, 복싱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프로 복싱에도 출전하여 2전 2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1990년 에서 스턴트맨으로 본격 영화계 입문하여, 1992년 에서 첫 무술감독을 데뷔하였다. 1996년 MBC 연기대상 공로상 수상했으며, 스턴트맨 교육기관인 서울액션스쿨의 설립..

김하영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79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했으며 1999년 연극배우로 처음으로 데뷔하였고 2004년 7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학창 시절에 잡지 모델로 길거리 캐스팅되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탤런트 공채에 도전했다가 잇달아 낙방한 후 MBC 17기 성우 공채에서 2차까지 붙는 등 성우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방송사 측으로부터 재연 배우로 활동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고, 김하영은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주위에서는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지만 그때는 그런 게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서프라이즈' 팬이었고 연기도 하고 싶었다"며 "사실 처음에는 성우처럼 연기해서 지적도 당했다. 이후 다신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

신민아는 대한민국의 모델겸 배우이다.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키키' (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 (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 (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구지성 은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출신의 교수이다. 서울예술전문학교 레이싱모델학과 교수[3] 레이싱 모델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다가 연기자가 되기 위해 2010년 레이싱 모델에서 은퇴하였고 2011년부터는 연기자로 자리잡기 위해 예능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레걸계의 여신으로 추앙받던 본좌급 레이싱 모델이었다. 깜찍한 외모 밑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몸매로 모터쇼에서 항상 분대 단위의 디카맨들을 대동하였다. 어려 보이는 얼굴과 항가한 몸매 때문에 연기자 전업 전에는 항상 베이글녀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왔다. 사이즈가 거의 F~G컵이라고. 열심히 단련한 완벽한 몸매긴 하지만 종아리 알이 옥의 티라는 평가가 있다. 때문에 화끈한 앞트임 드레스를 입을 때도 뒤만은 안 찍히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레이싱 모델을..

권아솔은 2006년 8월 케이블 채널 XTM의 격투기 서바이벌 쇼 《Go! 슈퍼코리안》 시즌 2를 통해 데뷔, '타격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기를 얻었다. 2007년 3월 Spirit MC에서 이광희와 라이벌매치를 가졌으나 1라운드 2분 24초만에 KO패 하였다. 시합영상 2007년 6월 17일 열린 Spirit MC 인터리그 6에서 장덕영에 KO승을 하며 웰터급 타이틀 도전권을 얻었고, 8월 19일 Spirit MC 12회 대회에서 이광희와 타이틀 매치를 가졌으나 연장 라운드 2분 46초에 KO로 패배했다. 이후 K-1 Hero's, 센고쿠, Deep 등에서 활동하다가 일본단체 Heat의 웰터급 챔피언에 올랐지만 라이트급으로 체급을 내리면서 벨트를 반납했다. 이후 Heat, Deep, One..